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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병례, 화2002_허리를 굽혀 발밑을 살핀다 고암 정병례, 화2002 작품명/사이즈 : 화2002(26*36.5) 내용 : 문자를 보다 상형성을 강조하여 단순 그 자체를 색상의 다채로움으로 표현. ---------------------------- [허리를 굽혀 발밑을 살핀다] 화和라는 말은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말이다. 볼펜에 글자를 새겨 나누어 준 적이 있다. 그때도 화라.. 2013. 12. 24.
정병례, 심2001_손짓하는 산 고암 정병례(새김예술가, 설치미술가, 환경미술, 전각가) 작품명/사이즈 심心2001(25*35.5) 내용 陰과陽(음과양)을 心字로 표현 인간의 마음도 밝음과 어둠이 있듯이 땅속에 있는뿌리는 흰색이지만 땅위로 나온 줄기는 검은색으로 표현 함. ----------------------- [손짓하는 산] 산을 좋아한 것일.. 2013. 12. 24.
100-천양희, 옷깃을 여미다 옷깃을 여미다 /천양희 비굴하게 굴다 정신 차릴 때 옷깃을 여민다 인파에 휩쓸려 하늘을 잊을 때 옷깃을 여민다 마음이 헐한 몸에 헛것이 덤빌 때 옷깃을 여민다 옷깃을 여미고도 우리는 별에 갈 수 없다 시집 <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> '11 창비 ----------- 요즘은 차를 마시면서 .. 2013. 12. 23.
099-천양희, 물음 물음 / 천양희 세 번이나 이혼한 마거릿 미드에게 기자들이 왜 또 이혼했느냐고 물었다 그때 그녀가 되물었다 " 당신들은 그것만 기억하나 내가 세 번이나 뜨겁게 사랑했다는 것은 묻지 않고 " 시 쓰는 어려움을 말한 루이스에게 독자들이 왜 하필 시를 쓰느냐고 물었다 그때 그가 되물었.. 2013. 12. 23.
098-함민복, 감촉여행 감촉여행 (시. 함민복) 도시는 딱딱하다 점점 더 딱딱해진다 뜨거워진다 땅 아래서 딱딱한 것을 깨오고 뜨거운 것을 깨와 도시는 살아간다 딱딱한 것들을 부수고 더운 곳에 물을 대며 살아가던 농촌에도 딱딱한 건물들이 들어선다 뭐 좀 말랑말랑한 게 없을까 길이 길을 넘어가는 육교 바.. 2013. 12. 23.
097-황희순, 한여름 밤의 꿈 한여름 밤의 꿈 / 황희순 고추 몇 포기 심은 8층 베란다 화분에 엄지손톱만한 청개구리 한 마리 앉아 있다 창문도 꽁꽁 닫아 놓았는데 이 한밤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인연이 닿으면 생명도 전깃불 켜지듯 홀연히 켜지는 것일까 언젠가 만져본 듯한 보드라운 살 두 손 오므려 받쳐 들고 .. 2013. 12. 23.
096-이규배 , 오늘, 석류나무가 밤새 울었다 오늘, 석류나무가 밤새 울었다 / 이규배 아, 사랑아 마른 입술에 빨리던 담배 꽃불처럼 확확 달아올라, 꽃 피어 오디 빛 피 맺히던 스무 살 적 네 젖무덤에 고개 묻고 울던 젊음이 먹먹한, 먹먹한 뉘우침의 빗방울로 석류나무 붉은 상처 위에 매달리고 매달리다가 아아, 온 밤을, 온 밤을 울.. 2013. 12. 23.
095-박남희, 구름 비빔밥 구름 비빔밥 / 박남희 나는 비빔밥을 즐겨 먹는다 여러 가지 나물을 큰 그릇에 담아 고추장을 넣고 쓱쓱 비벼 먹는 재미와 맛이 그만이다 나물들은 그릇 속에서 고추장에 비벼지면서도 고개를 꼿꼿이 세우며 일어서서 자신들의 싱싱함을 자랑한다 무엇에 한 통속으로 비벼진다는 것 비벼.. 2013. 12. 23.
094-이기와, 깊음과 여유를 아는 중년의 섬진강 깊음과 여유를 아는 중년의 섬진강 / 이기와 섬진강은 순수 미인이다. 상류나 하류 어디를 가도 성형한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. 나이가 들 만치 들어 깊음과 여유의 성숙미가 돋보이는 자태를 갖고 있다. 두메산골 아낙처럼 가꾸지 않았지만 촌스럽거나 무지해 보이지 않다. 정갈하게 일.. 2013. 12. 23.
093-김종미, 눈물 화석 눈물 화석 / 김종미 울음이 타고 흘러내리는 벽에 대한 기억이 있다 사십 세, 나와 동갑이던 윗집 여자가 남편을 잃고 흐느끼는 소리였다 침대머리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노라면 환한 대낮에도 섬뜩한 울음소리가 흘러내렸다 한 일 년, 내 등을 적시며 벽이 그렇게 울었다 그렇게 울음을 .. 2013. 12. 23.
092-이규리, 예쁘기를 포기하면 예쁘기를 포기하면 / 이규리 TV에서 본 여자 투포환 선수나 역도 선수는 예쁘지 않다 화장기없는 그 얼굴들은 예쁜 것을 뭉쳐서 멀리 던져 기록으로 바꾸었다 미모의 탤런트가 예쁘기를 포기하니 단박 연기에 물이 오르고, 예쁜 데 신경 쓰지 않는 라면집 아줌마가 끓이는 라면은 환상적.. 2013. 12. 23.
091-이면우, 작은 완성을 위한 고백 작은 완성을 위한 고백 / 이면우 술, 담배를 끊고 세상이 확 넓어졌다 그만큼 내가 작아진 게다 다른 세상과 통하는 쪽문을 닫고 눈에 띄게 하루가 길어졌다 이게 바로 고독의 힘일 게다 함께 껄껄대던 날들도 좋았다 그 때는 섞이지 못하면 뒤꼭지가 가려웠다 그러니 애초에 나는 훌륭한 .. 2013. 12. 23.
090-이승하, 저 강이 깊어지면 저 강이 깊어지면 / 이승하 바람 다시 실성해버려 땅으로 내리던 눈 하늘로 치솟는다 엊그제 살얼음 덮였던 강 오늘은 더 얼었을까 얼마만큼 더 두터워졌을까 깊이 모를 저 강의 가슴앓이를 낸들 알 수 있으랴 눈 … 눈 닿는 어디까지나 눈이 흩날려 세상은 자취도 없다 길도 길 아닌 것도.. 2013. 12. 23.
089-도종환, 시래기 시래기 /도종환 저것은 맨 처음 어둔 땅을 뚫고 나온 잎들이다 아직 씨앗인 몸을 푸른 싹으로 바꾼 것도 저들이고 가장 바깥에 서서 흙먼지 폭우를 견디며 몸을 열 배 스무 배로 키운 것도 저들이다 더 깨끗하고 고운 잎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가장 오래 세찬 바람 맞으며 하루하루 낡아간.. 2013. 12. 23.
088-최명란, 멍 멍 / 최명란 베란다에 둔 가을무가 오글오글 노란 싹을 틔우곤 물컹 썩었다 목까지 차올라 멍이 드는 무의 푸른 고통을 견디며 가슴속에 수도 없이 갈겨놓은 푸른 글씨들은 물이 되 었다 퍼렇게 오른 알몸으로 서로 부둥켜안고 참 무던히도 파닥거렸을 거다 아팠던 자리에 꽃이 피고 흔적.. 2013. 12. 23.
087-윤석산-외로움이라는 말의 파문(波紋)을 바라보며 외로움이라는 말의 파문(波紋)을 바라보며 / 윤석산 그대여, 나는 외롭다고 말하려 하네. 내 말이 그냥 그렇게 들린다면 누군가 사랑하고 싶다고 말하려 하네. 그래도 그냥 그렇게 들린다면 누우렇게 풀잎이 시들어가는 언덕 너머로 흐르는 흰구름을 따라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고 말하려 .. 2013. 12. 23.
086-함순례, 꼴림에 대하여 꼴림에 대하여 / 함순례 개구리 울음소리 와글와글 여름밤을 끌고 간다 한 번 하고 싶어 저리 야단들인데 푸른 기운 쌓이는 들녘에 점점 붉은 등불 켜진다 내가 꼴린다는 말을 할 때마다 사내들은 가시내가 참, 혀를 찬다 꼴림은 떨림이고 싹이 튼다는 것 무언가 하고 싶어진다는 것 빈 하.. 2013. 12. 23.
085-임경빈, 청미래덩굴 청미래덩굴, 나는 어릴 때 이 덩굴을 고향의 뒷산에서 보았다. 아무리 보아도 이상한 것이었다. 우리 동네사람들은 이것을 망개라고 불렀다. 1~2m정도로 뻗어나가는 덩굴식물이지만 둥글고 강인해 보이는 잎이 인상적이었다. 잎의 색깔은 진한 푸름이고 유달리도 번쩍였다. 광택이 있다는.. 2013. 12. 23.
084-김종미, 고등어 좌판 고등어 좌판 / 김종미 구울 거요? 지질 거요? 내려칠 칼을 든 여자와 좌판의 고등어가 두 눈 빤히 뜨고 나를 보고 있다 염라대왕이 이런 기분일까 네 영혼을 지글지글 구워주랴? 아니면 얼큰하게 지져서 이 지옥을 기름지게 할까 그러고 보니 내 몸이 지옥이다 이 지옥 속에 감금된 영혼을 .. 2013. 12. 23.
083-김용택,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/ 김용택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사는게 이게 아닌데 이러는 동안 어느새 봄이 와서 꽃은 피어나고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러는 동안 봄이 가며 꽃이 집니다. 그러면서 그러면서 사람들은 살았다지요 그랬다지요 ---------- 김용택 시인은 최근에 정년을 하고 지구온난화 .. 2013. 12. 23.
082-최을원, 자전거, 이 강산 낙화유수 자전거, 이 강산 낙화유수 /최을원 길가 철책 너머, 오래 방치된 자전거를 안다 잡풀들 사이에서 썩어 가는 뼈대들, 접혀진 타이어엔 끊어진 길들의 지문이 찍혀 있고 체인마다 틈입해 화석처럼 굳은 피로들, 한때는 자전거였던 그 자전거 한 사내를 안다 새벽, 비좁고 자주 꺾인 골목을 .. 2013. 12. 23.
081-천양희, 1 년 1 년 / 천양희 작년의 낙엽들 벌써 거름 되었다 내가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을 뿐인데 작년의 씨앗들 벌써 꽃 되었다 내가 꽃밭을 바라보고 있었을 뿐인데 후딱, 1년이 지나갔다 돌아서서 나는 고개를 팍, 꺾었다 ------------ '돌아서서 나는 고개를 팍, 꺾었다' 꺾이지 않고 살기에는 뒷목이 .. 2013. 12. 23.
080-윤제림, 세 가지 경기의 미래에 대한 상상 세 가지 경기의 미래에 대한 상상 / 윤제림 올림픽 경기 중에 마라톤만큼 단조로운 경기도 없다. 신문 한 장을 다 읽도록 드라마 한 편이 끝나도록 같은 장면이다. 땀 얼룩의 일그 러진 얼굴과 뜨거운 대지를 두드리는 나이키 운동화 아니면 검은 맨 발.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 경기.. 2013. 12. 23.
079-온형근, 모감주나무 모감주나무 / 온형근 꽃이 피어 아 꽃이 피었구나 했다 그 사이에 있고 없음 묻고 답함이 스쳐갔다 그 꽃이 살짝 입힌 노란색 꽈리로 새 옷 입은 것을 보고서야 꽃은 지는게 아닌 것을 꽃이 하나인 것을 내 눈길이 젖어 있었다 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 첫 시집에는 유난히 나무가 등장한다. .. 2013. 12. 23.
078-김인자, 일월저수지 일월저수지 / 김인자 술판 끝나고 심야에 찾아간 일월저수지 어디서 왔는지 낮에는 볼 수 없었던 물오리 떼들 와그르르 짝짓기에 수면이 휘청거린다 처음 물오리들은 어떻게 이곳으로 이사오는 길을 알았을까 둑 발치께 엎드려 사는 갈대들은 알 것이다 숨을 죽이고 문구멍으로 몰래 훔.. 2013. 12. 23.
077-안상학, 국화 국화 / 안상학 올해는 국화 순을 지르지 않기로 한다 제 목숨껏 살다가 죽음 앞에 이르러 몇 송이 꽃 달고 서리도 이슬인 양 머금다 가게 지난 가을처럼 꽃 욕심 앞세우지 않기로 한다. 가지 잘린 상처만큼 꽃송이를 더 달고 이슬도 무거워 땅에 머리를 조아리던 제 상처 제 죽음 스스로 조.. 2013. 12. 23.
076-박정대, 되돌릴 수 없는 것들 되돌릴 수 없는 것들 /박정대 나의 쓸쓸함엔 기원이 없다 너의 얼굴을 만지면 손에 하나 가득 가을이 만져지다 부서진다 쉽게 부서지는 사랑을 생이라고 부를 수 없어 나는 사랑보다 먼저 생보다 먼저 쓸쓸해진다 적막한, 적막해서 아득한 시간을 밟고 가는 너의 가녀린 그림자를 본다 네.. 2013. 12. 23.
075-이영광, 숲 숲 / 이영광 나무들은 굳세게 껴안았는데도 사이가 떴다 뿌리가 바위를 움켜 조이듯 가지들이 허공에 불꽃을 튕기기 때문이다 허공이 가지들의 氣合보다 더 단단하기 때문이다 껴안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무른 것으로 강한 것을 전심전력 파고든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무들의 .. 2013. 12. 23.
074-이면우, 봄밤 봄밤 / 이면우 늦은 밤 아이가 현관 자물통을 거듭 확인한다 가져갈 게 없으니 우리집엔 도둑이 오지 않는다고 말해주자 아이 눈 동그래지며, 엄마가 계시잖아요 한다 그래 그렇구나, 하는 데까지 삼 초쯤 뒤 아이 엄마를 보니 얼굴에 붉은 꽃, 소리없이 지나가는 중이다. ------------ 이슬비.. 2013. 12. 23.
073-김소양, 별 소나기 별 소나기 / 김소양 영월 마대산 산골마을 어둔이골에서 자던 날이었습니다 뒷간까지 내려가는 것도 무서워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소피를 보고 있을 때였지요 하늘 구석구석 촘촘히 뚫어놓은 작은 창, 그 구멍마다 들이대고 있는 눈과 눈에서 은빛 명주실이 소나기로 쏟아지며 저를 휘감.. 2013. 12. 23.